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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후기
한 학기가 진짜 금방 간다. 글을 쓰는 지금은 벌써 한국으로 귀국해서 다시 서울로 갈 준비 중이다. 사실 한 학기동안 많은 걸 배울 수 있을지 걱정도 많이 했지만, 돌아보면 생각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시간이었다.
- 사람은 관성의 동물이다. 마냥 어려울 것 같던 생활도 몇 번 하니 적응되고, 적응하니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익숙한 것을 무의식적으로 계속 하고 싶어하고, 그래서 점점 정체되는 걸 피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의도적으로 내가 익숙하지 않고 편하지 않은 걸 계속 해야만 한다. 교환학생을 왔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처음 준비할 때는 막연한 의심을 많이 했다. '충분한 가치가 있을까?', '한 학기를 날리게 되면 어떡하지?'. 근데 교환오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 대부분 내가 피하고 싶고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하면 도움이 된다. 유튜브를 보지 않고 공부를 하면 도움이 된다. 영어로 말하기 힘들어도 대화하면 도움이 된다. 운동하기 귀찮아도 하고나면 도움이 된다. 나에게 득이 되는 행동은 행동을 시작할 때가 아니라 끝날 때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점을 깨달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 살아갈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 살면서 이번처럼 영어를 밀도있게 배울 수 있는 경험이 많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영어로 대화하는 자리를 많이 가지고 싶었다. 혼자 공부하는 게 더 좋지만 일부러 같이 공부하고, 밥도 나가서 먹기 귀찮지만 만나서 먹고 그랬다. 결과적으론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계속 대화해보면서 깨달은 게, 한국어로 대화할 때 쓰는 사고방식을 그대로 대입할 수 있다는 거다. 어휘를 몰라도 대화할 수 있고, 주어진 컨텍스트와 기본적인 요소들만 있으면 서툴러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부분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어려운 건 듣기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영어 듣기를 계속 연습하고 있는데, 이것도 언젠가 깨달음을 얻을 거라 믿고 있다.
- 미국과 한국 사람들이 인식하는 '자유'는 엄청 다른 것 같다. 철학 지식이 얕아 깊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한국은 제한된 자유를 추구하고 미국은 주장하는 자유를 추구하는 것 같다. 그래서 수업시간에도 되게 자유롭게 의견을 펼치는데 논리의 정합성을 떠나서 그냥 주장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다. 이 부분이 참 양날의 검이긴 하지만 한 편으론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는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룹이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조심스러울 때도 많고, 눈치볼 때도 많다. 이런 생각들을 철학에서 찾아보면 재밌을 거 같아서 개강하기 전에 '자유론'을 한 번 읽어보는 게 목표다.
- 토론토에 여행갔을 때 인종차별을 한 번 당했다. 친구랑 길을 지나가는데 백인 남성분이 나를 보며 "칭칭"이라고 했다. 근데 생각보다 별로 기분이 안 나쁘고 오히려 측은했다. 반대로 '내가 정서적으로 여유롭고 건강하면 피부색으로 차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싶었다. 멜라닌 색소가 부족한 게 자랑은 아닐 테니까.. 지금 한국에도 다른 편에 서서 서로를 비난하는 일이 많은데, 나도 분명 그 중 한 축에 있을 거다. 진짜 일류는 그런 걸 생각할 필요나 여유도 없는 사람이라 생각이 들어서, 더욱 차별없고 편견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 한국이 생각보다 인기가 많다. 내가 편향된 집단에 있어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BTS의 영향은 진짜 상상 이상이었다. 친구들이 나한테 한국 아이돌 그룹, 드라마 소개해주고 그랬다. 이번 년도에 한국 오는 친구들도 많다. 한낱 작은 동아시아 국가가 이 정도라니,, BTS 감사합니다!!
혹시 본인이 졸업 전 교환학생을 고민 중이라면 정말 가능하다면 무조건무조건무조건 가라고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미국을 추천하긴 하지만 사람마다 하고 싶은 건 다를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 배운 걸 잊지 말고 언젠가 다시 미국에 갈 날을 기원하며.